엘베 강에 도달한 몽골 말


엘베 강에 도달한 몽골 말

인류 역사에 세계 2 차 전쟁으로 알려졌으며 독일의 정권이 유럽에 세워지고 남쪽은 모스크바에 도달하기에 25키로만 남은 시기인 1945년에 형제의 관계를 가진 소련을 돕기 위한 “적군(赤軍) 돕기 운동”이 몽골 백성들 중에 얼어났다. 그 시기는 몽골이 옛날 몽골 제국이 아니었다. 나라가 가난하고 줄 것이 별로 없었지만 반세계를 밟아본 몽골 말은 힘이 그대로 있었단 것이다.

Danny van Luttikhuizen님이 촬영한 Mongolian horse. //

이유가 있었단 것이다. 몽골의 조상인 칭기스칸이 말을 아끼기를 담부하여 국가 법을 통해서 말을 지키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을 어기면 사형까지 당했었다. 먼 옛날부터 말을 소중히 여겨 온 몽골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따를 만한 법이었다.

칭기스칸의 대법령인 “이흐자삭”에 전쟁이 끝난 후 전쟁터에 나간 말들을 풀과 물이 풍부한 추원에 풀어놓는 것을 규정했다. 그런 말들을 함부로 타거나 다른 데로 쫓기는 것을 금지하여 어기면 사형을 당하게 되어 있었고 말의 머리나 눈을 때리면 똑 같은 벌을 받았다.

옛날부터 불러온 나라 이름을 바꾼 “공산주의” 몽골이 이렇게 국가법으로 지켜 온 말을 원조로 보낸 것이다. 소련 적군에 보낸 몽골 말 수가 50만에 도달했다는 통계가 있다. 소련의 남부 지역, 더 자세히 말하면 보리아트, 치티 지역에서 몽골 말을 탈 것이나 운송용으로 훈련시켜서 기마대로 보냈다. 거기서 몽골 말들이 조국에서 맡겨진 업무를 수행했다. 보리아트와 치티 병사들이 몽골 말과 가장 친했다. 몰골 말은 마구간에서 기르는 말처럼 양쪽에서 타거나 뒤쪽과 앞쪽에서 함부로 다가가면 안 된다. 안장을 얹히는 일 등을 부드럽게 해야지 너무 세고 함부로 움직이면 놀라서 빙 돌아 뛰거나 안장 끈을 묶지 않게 뒤 발로 차버린다. 몽골 말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소련에 속하게 된 보리아트 민족들이다.

무한한 힘으로 인정받은 몽골 말들이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등의 나라를 해방시킬 때 참여하여 오스트리아의 베니 시와 엘베 강에 도착하여 승리의 기쁨을 나눌 운명이 있었다. 이 승리가 너무나 많은 희생으로 얻어졌다. 소련만 해도 그 전쟁으로 2천만 사람을 잃었다.

그 많은 희생자들 중에 하나인 러시아 병사 시체 옆을 떠나지 못하는 몽골 말이 있었다고 한다. 소련 군인들이 마을을 해방시켜 적군을 쫓아갔다. 마을 사람들이 부상자들을 모으고 전사자들을 매장할 때 한 군인 시제 옆에 몽골 말이 서 있었으며 신기한 일은 그 말이 죽은 주인을 두고 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다가오면 제 자리에 돌아서서 뒤 발로 차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몇 번 노력해야 그 군인을 체대로 매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얼마 후 마을 사람들이 그 말을 본 마을을 통과한 기마대에 탈 것으로 주었다. 근데 1개월 되기도 전에 그 말이 돌아와서 주인 무덤 옆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 후에 다시 한 번 기마대에 보냈지만 또 돌아왔다고 한다. 드디어 마을 사람들이 그 말의 운명을 결정하여 밭에서 쟁기를 끄는 일에 사용했다. 마구간에 기르면 익숙하지 않아 윤을 잃기 때문에 초원에 풀어놓았다. 그 말이 초지에 나가서 풀을 뜯어 먹기 전에 꼭 주인 무덤에 와서 크게 울곤 했다.

전쟁 때에 몽골 말은 쉽게 병들지 않고 상처를 입어도 잘 견디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몽골 말이 힘이 세며 굶어도 잘 견디고, 쉽게 지치지 않고, 다양한 식물을 먹을 수 있는 것 등 여러 장점이 전쟁 시기에 가장 잘 맞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소련 군인들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 있고 지나친 속셈을 갖고 있었던 독일 사람들이 그들의 털 많은 말들의 모습을 비디오테이프에 남겼다. 본 영화 제작자들이 전쟁 희생자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전쟁 벗인 적(赤)군으로부터 헤어져 독일 부대에 포로로 온 말들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그 특징이다. 그 때 독일인들이 소련의 개량시킨 품종의 키가 큰 말들과 키가 작은 몽골 말들이 섞어진 말무리를 포획했다. 개량했고 잘 알려진 소련 말들이 독일인들의 손에서 소금과 설탕을 먹으며 편하게 지냈지만 몽골 말들은 그들의 손에서 사료를 먹기는커녕 이끌어 가려고 다가오면 뒤발로 차며 골짜기에서 눈을 발굽으로 파헤치며 스스로 풀을 뜯어 먹고 눈을 먹어서 목마름을 풀었던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사람이 가르쳐 준 뜻 독일 군인들을 꺼려 소련 군인들의 외투 냄새와 어루만짐을 그리워하는 몽골 말을 붙잡는 일이 아주 힘들었다. 고대 칭기스칸의 충절한 말들이 여기 있다고 이 다큐멘터리가 주장한다.

소련 군인들은 자신이 타는 몽골 말을 몽골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아주 빠른 말을 “로켓”아라고 하기도 하고 친한 친구로 삼아 사람 이름 붙이기도 했다. 1942년 겨울에 몽골에서 보낸 말들을 건네받기 위원 회원 중에 한 명인 이반 안드레비츠 안드레이브가 기차역에 가서 말이 있는 컨테이너로 들어가서 한 마리 한 말리씩 데리고 나온다고 생각했더니 문을 열자마자 말들이 뛰어들어 계단을 따라 내린 말이 있지만 대부분 뛰어내렸다. 안드레이브는 원래 키가 큰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말보다 체격이 큰 흰색 말을 골랐고 바스카란 러시아 친구의 이름을 붙여 주었다. 안드레이하고 정이 든 흰 말이 이름을 부르면 울며 꼭 대답을 했단다. 몽골 말은 좋은 기질이 많았다. 전쟁의 급한 상황에 알맞고, 재갈이 물려 있어도 풀을 뜯어 먹을 수 있고, 안 먹어도 견딜 수 있고, 지쳐서 멈추지를 않는 것이 놀라웠다. 충실한 말 바스카가 깊은 물이나 늪가에 와서 머리를 내리며 자세히 보는 뜻, 냄새도 맞는 뜻 킁킁거리다 물러서면 들어갈 수 없다는 표시였다.

몽골 말의 그런 능력을 모르고 급한 명령을 받자 깊은 늪을 건너려고 했는데 말이 들어가 주지 않으니까 세게 때리고 억지로 들어가게 했더니 그냥 빠져 버렸다. 안드레이브가 늪에 빠진 줄 이제야 깨닫고 너무 놀랐으며 바스카가 온 힘을 다해서 늪 속에서 빠져나왔다. 주인을 구해 준 말에 입을 대며 고마워하고 그 후부터 말의 경고를 잘 듣게 되었다. 1944년 전쟁 길에 그는 자기 말인 바스카를 한 농부한테 맡겨두고 몇 번의 전쟁을 겪으며 30 킬러미터 정도 떠나간 후 바스카가 달려오며 우는 것이 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주님과 함께 하겠다고 말하는 뜻했다. 소련 군인과 몽골 말이 이렇게 정이 들었다. 그들은 베를린 남쪽까지 전쟁하여 유럽 가운데로 흘러가는 엘베 강 물을 말에 먹였다. 근데 바스카 주인은 전쟁 공헌 메달을 획득한 소감을 말할 때 몽골 말이 소련 군인한테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 일이 가능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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